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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옛 직산현(稷山縣)의 산 증인! '직산현 관아'이야기
방랑수달 생활정보 등록일 2024-04-29



'직산읍'은 현재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에 있는 '읍'입니다. 그런데 직산읍은 옛 직산(稷山), 그리고 직산현이라는 조선시대의 읍치가 있었던 지역이라고 지난번에 소개를 해드렸었는데요. 이는 1872년에 제작된 옛 고지도에도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직산현은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교통의 요충지임과 동시에 많은 백성들이 거주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요. 오늘 찾은 이 직산현관아는 조선시대 행정 관청 건물입니다. 





직산현관아는 관아 입구를 늠름하게 지키고 있는 외삼문이 관아로 향하는 관문 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바로 '호서계수아문'이라는 약간 어려운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경기도와 경계를 이루는 호서의 첫 관문이라는 뜻으로 당시 한양에서 삼남으로 통하는 길목이라는 뜻이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고보면, 천안에는 '천안삼거리'라는 유명한 지명이 계속하여 후대에 전해지고 있는데요. 그만큼, 천안시가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교통의 요충지였다는 반증입니다. 관아의 외삼문을 '호서계수아문'이라고 지은 것도 말이죠. 대부분의 누각은 두 글자, 혹은 세 글자 정도로 끝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직산현관아는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군서1길 59-(군동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네비게이션에는 그대로 '직산현관아'로 검색하셔서 찾아오실 수 있습니다. 외삼문 앞에 공간이 넓게 정비되어 있어 주차도 가능하고요. 현재 유형문화재 제 42호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본래 이곳에 위치하고 있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임진왜란 직후인 1606년(선조 39)에 신순일 이라는 현령에 의해 현재 위치로 자리가 옮겨졌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선 후기에 기록된 문서들에는 객사 19칸, 동헌 14칸, 내아 30칸 등 상당한 규모로 많은 부속건물들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요. 아쉽게도 현재는 내아, 동헌, 내삼문, 외삼문 등 4개 동만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잘 생각해보면, 이렇게 '관아'의 건물 형태가 남아 있는 문화재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일부 지자체들은 관아의 형태가 남아있지 않은 것을 이유로, 최대한 관아가 있었던 곳을 추정하여 새롭게 '복원'해놓은 곳도 많으니까요. 그렇게 온전히 관아의 흔적이 4개 동이나 남아 있다는 것은 나름의 축복이 아닐까 합니다. 





현감이 업무를 보던 동헌은 비교적 그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정교한 편입니다. 정면 7칸 측면 3칸으로 건축이 되었고요. 가운데에 4칸은 큰 대청이 있는 구조를 지금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좌우로 온돌방이 위치하고 있는 것도 특징입니다. 정면 7칸과 측면 3칸으로 이루어진 구조가 안정감이 들고 웅장해보이는 효과가 있네요. 





호서계수아문은 지방문화재 52호로 등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지금도 4개 동의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으로 충분히 문화재 답사를 하기에 가치가 높은 곳입니다. 약간의 보수와 정비를 통해 조금 더 많은 분들이 찾아올 수 있는 천안의 대표 문화재가 되었으면 하고요. 대청에 옛 현감과 관리들의 모형을 배치하거나 야외 공간에 조금의 전시를 구성해놓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직산현은 잊혀지지 않고 직산읍으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직산현이 있었다는 산 증인! '직산현관아'를 답사해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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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6 1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