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용두리 | ||||
팀명 | 병천면 | 등록일 | 2015-11-30 | 조회 | 23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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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천면 이원동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만화리, 용두리, 신촌, 산서
리, 수입리가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용두리라 하여 동면에 편입되었다가 1973년 7 월 1일 대통령령 제6542호로 동면에서 분리되어 병천면에 편입되었다. 용두리 : 뒷동산의 산등이 용과 똑같이 생겼고 용의 머리부분이 되므로 용두리라 하였다고 한다. 대위 : 대위산이라고도 하는데 만마루 오른족에 있는 산. 돈대로 되었다. 이 산기슭에 선조대 어우(於于) 류몽인(柳夢寅) 유활(柳活) 고종때 유봉 석(柳鳳錫)위패를 모시고 춘추로 제를 지낸다. 지령리(芝靈里) : 산서(山西)라고도 하며 매봉 밑에 있는 마을. 산이 둘러싸고 물이 돌아 흘러서 인걸이 많이 날 땅이라 하여 지령리라 하였는데 영조때 학자 유광흥이 지와(芝窩)라고 하고 지령으로 고쳤다. 산이 서쪽에 병풍같이 둘러 있으므로 산서라고도 하며 이곳에서 순국처 녀 유관순이 태어났으며 그의 비와 생가가 있다. 찬우물 : 만마루에 있는 우물. 청결하고 물이 달며 수량이 많다. 창틀고개 : 창평리 호항령 만마루에서 병천면 탑원리 창들로 넘어가는 고개. 병목같이 생겼다. 장각골 : 무드리 왼쪽에 있는 골자리 입구는 좁고 그 안쪽은 넓고 매우 아늑하 다. 영조 무신난 때 만화당(晩華堂) 류진한(柳振韓)이 17세에 이곳에서 피난하면서 들을 읽었다. 용마지(龍馬池) : 만마루 강신대 위에 있는 못. 숙종때 참판 류광익(柳光翼)이 꿈에 이 못에서 말이 나와 용으로 변하였으므로 용마지라 하며 자손의 이 름을 용마의 이름을 붙여 지었고 그 자손들이 매우 번창하고 있다. 와우고개 : 와우현(臥牛峴) 무드리에서 칡덮말로 넘어가는 고개. 고종때 학자 노제 류지빈의 묘소가 와우형인데 그 뒤가 된다. 삼수처사 : 류봉석 기념비, 고종 때 학자 류봉석 기념비를 대화산 기슭에 1965 년 10월 목천 유도회에서 그의 충효우(忠孝友)를 기리기 위해 세웠다. 안장바위 : 말바위 옆에 있으며 말안장 처럼 생긴 바위. 영회단터(英會堂) : 강당터, 수리봉 아래에 있는 영회당 터, 영조때 만화당 류진한, 지화 류광흥, 사암 김윤재가 강당을 세우고 후진 양성으로 영재를 길러 내었다. 서바랭이 : 무르리 입구에 있는 버덩. 만마룻들(萬華坪) : 만마루 앞에 있는 들. 무드리 : 수입리(水入里) 지령이 동쪽에 있는 마을. 개울이 마을을 돌아 흘러 간다. 백석봉 : 고등말 입구에 있는 산. 봉우리에 흰돌이 많이 있다. 부엉바위 : 부엉박골에 있는 바위. 부엉이가 살았다. 부엉박골 : 지령리 북쪽에 있는 골. 부엉바위가 있는 골. 말바위 : 지령리 북동쪽에 있는 바위. (전설) : 모양이 말의 머리처럼 생기고 그 입이 동면 구도리 보평마을을 향하여 벌리고 있는데 보평사람들이 이 말이 보평의 양식을 먹고 똥은 지령리에 서 누어서 보평은 늘 가난하고 지령리는 부하게 된다 하여 밤에 몰래 이 말바위 혀를 잘라다 산제당에 보관하였다고 한다. 유관순 집터 : 지령리에 있는 류관순의 집 터. 3.1 운동때 왜적들이 불을 놓아 전소되었다. 1962년에 충열비를 세우고 공원을 만들었으며 교회당을 짓 고 관리사를 새로 세웠다. 만마루 : 만화동, 만화촌(晩華村), 분토동, 쇳대배기, 효죽리라고도 하는데 용두 건너편에 있는 마을. 지대가 높아서 멀리 보이며 흙이 분토처럼 곱다. 류광천과 남세강이 함께 등과하여 솟대를 세웠으며 문장가 유진한이 호를 만화제라 하였다. 수입리 산제 : 산제가 있었는데 5년전에 교인들의 반대로 없어졌다. 옛날에는 도깨비가 많아서 도깨비 장난을 없애기 위해 생겼다고 하며 산 현 밑에 주인이 거주하므로 부락의 안녕과 복을 산신에게 빌었다 한다. |